그날부터 점점 심해지는 고통과 함께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한밤중에 찾아오는 극심한 두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베개를 흠뻑 적신 날도 있고 저녁밥을 토하지 않고 먹을 수 있어서 승리 포즈를 취한 날도 있었다.
휠체어에 타고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병원 안을 산책하니 처음으로 *슈퍼페미콤으로 *‘F-ZERO’를 플레이했을 때 그 이상으로 상쾌했다.
복도로 나온다는 기쁨.
매점에서 쇼핑할 때의 즐거움.
처음으로 치쿠와 빵을 먹었을 때의 커다란 충격.
계속 꽂혀있던 수액 주사를 떼어 냈을 때의 기쁨.
이상한 간호사가 왔을 때 느낀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그와 수반되는 슬픔.
병문안을 온 사람이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가 때로는 죄 없는 폭력이 되고 때로는 신기할 정도로 뛰어난 치료약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마음이 닳아서 점점 줄어들기도 하고 반대로 마음이 채워져 윤택해지기도 한다.
하늘이 맑은 날에 대한 감사함과 비가 내리는 날의 슬픔.
태풍이 부는 날 창문을 기세 좋게 때려대는 빗방울에 두근거리는 마음.
축제가 열린 날 밤 멀리서 들려오는 불꽃놀이 소리에 느낀 이상한 고독감.
즐거운 일도, 힘든 일도, 모두 농축해서 맛보았다.
병실에서 보내는 날들은 평소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축 늘어지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희로애락의 밀도는 굉장히 높다.
경치가 변하지 않는 병실 안에서는 언뜻 보기에 시간이 멈춘 것 같기도 하지만 절대 그런 일은 없고 일하고, 쉬고, 악착같이 움직이는 사람들과 같거나 혹은 그 이상으로 이러한 생활은 틀림없이 인생 그 자체였다.
살아온 증거나 실감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겉으로 보이는 행동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에 비례하는 게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진자가 얼마나 큰 폭으로 흔들리는지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퇴원하는 날 간호사분들의 배웅을 받으며 택시에 타고 아직 붓기가 조금 남아 있어 미묘하게 딴 사람 같은 얼굴이 비친 창문을 바라보며 이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나는 이 일을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슈퍼페미콤: 닌텐도사에서 만든 4세대 콘솔 게임기.
*F-ZERO: 닌텐도 계열 콘솔로 출시된 SF 레이싱 게임 시리즈.
2018년 20살 무렵 어느 한 블로그에서 호시노 겐 에세이를 번역해놓은 블로그를 우연히 본 적이 있었고, 그 블로거분이 쓰신 흡입력 있는 번역문 덕에 당시 호시노 겐이라는 사람에 대해 깊게 심취해있었다.
지금은 찾아봐도 블로그를 닫으신건지 다시 그 글을 읽어볼 수는 없고, 나는 그 분의 번역문에 발끝에도 못 미치는 비루한 글솜씨지만 번역을 하면서 이 부분은 나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두근두근했다.
저자인 호시노 겐을 포함해 그 블로거분께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내가 히라가나부터 시작해 이렇게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했고, 그 때 글을 읽으며 느낀 감정들을 아직까지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이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감사함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다.
호시노 겐 에세이 「생명의 차창에서, 命の車窓から」文章 70~75p 번역 (1) | 2022.1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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